통상임금소송, 신의칙 위반 판단기준 엄격해져

기아차·시영운수 판결…통상임금 재산정해도 지불여력 있으니 지급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재산정한 법정수당 추가 청구가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잇따른다.

최근 대법원은 시영운수 통상임금소송에서 원고들의 법정수당 추가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판결한 원심(서울고법 2015.4.29. 선고, 2014나2033671)을 깨고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인용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라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한다고 하여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그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추가 법정수당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9.2.14. 선고, 2015다217287).

서울고등법원도 최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소송에서 “일정한 근속기간에 대해 일정한 지급주기에 따라 일정액이 확정적으로 지급된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전제하고, “근로자들의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임금지급 추가 요구가 신의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서울고법 2019.2.22. 선고, 2017나28858·28865·28872·28889).

통상임금 판결

신의칙이란 민법 제2조(신의성실)에 정한 명문규정이지만, 사법과 공법을 포함 모든 법 영역에 적용되는 추상적 규범이다. 계약관계인 당사자가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할 때,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배려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해야한다는 원칙이다.

신의칙 법리가 통상임금소송에서 쟁점으로 부상한 계기는 지난 2013년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선고 2013.12.18. 선고, 2012다89399)이다. 당시 대법원 전합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하고, 근로자가 사후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재산정해 법정수당을 추가로 청구한 경우, 그 인용여부는 ‘신의칙 법리’에 따른다고 판결했다.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신의에 현저히 반한다는 법리다.

통상임금 신의칙

대법원 전합은 신의칙 위반 법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사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일 것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 간에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 수준을 정했을 것 ▲근로자측이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함으로써 합의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합판결 이후 노동법 전문가 대다수는 신의칙 적용 요건이 불확정적인 개념이라고 지적하고, 도대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어느 정도 돼야 그 요건을 충족하는지 알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모호한 신의칙 적용 요건으로 사실상 동일한 사건임에도 회사 사정에 따라,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소송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대법원 전합판결 이후 200여건이상 통상임금소송이 제기됐고, 대법원 및 하급심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 판단기준은 보다 구체화됐다. 특정수당의 통상임금 해당여부에 대한, 법원은 물론 노사간 간극도 크지 않다.

그러나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법정수당 추가 청구의 당부를 가르는 신의칙 적용 요건의 충족 여부에 대한 노사간 입장 차이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여기에 법원의 판단도 법관에 따라 제각각인 게 현실이다.

회사가 예측 못한 재정적 부담은 어느정도 일까

기아차·시영운수 원고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됐다고 볼수 없어

최근 시영운수 통상임금판결(대법원)과 서울고법의 기아자동차 통상임금판결(서울고법)은 향후 법원이 신의칙 적용 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판단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주목해야 할 판결이다.

시영운수 판결

인천광역시 소재 버스회사인 시영운수 노동자 22명은 회사를 상대로 2013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단체협약이 무효라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미지급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당시 회사는 기본급의 연 600%에 해당하는 상여금을 운전기사에게 매월 나눠 지급했다. 노사 양측은 2011년과 2012년 단체협약을 통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 법리를 원용해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서울고법은 원고들의 주장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액을 약 7억8000만원으로 산정하고, 이를 지급할 경우 “피고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에 빠져 원고의 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며 사용자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상고심은 서울고법과 동일하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 법리를 원용했음에도 결론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신의칙 위반 적용요건인 회사의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과 그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 정도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원고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통상임금 정의

대법원은 원심판결이 산정한 추가 법정수당 총액(약 7억8000만원) 중 원심 변론종결일 당시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부분을 공제하면, 원고들이 피고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법정수당액은 4억원 상당으로 추산했다.

반면 ▲피고회사가 원고들에게 지급해야 할 법정수당액(4억원 상당)은 피고회사의 연간 매출액의 2~4%, 2013년 총 인건비의 5~10%에 불과하고 ▲피고회사의 2013년 기준 이익잉여금만 3억원을 초과해 법정수당액 상당 부분을 변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피고회사가 2009년 이후 5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꾸준히 당기순이익이 발생하고 있으며, 매출액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원고들의 청구가 피고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피고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피고회사가 버스준공영제의 적용을 받고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안정적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기업의 존립 위기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기아자동차 판결

기아차노조 소속 생산직 근로자 약 2만7000명은 기아차를 상대로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회사가 지급한 제수당(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특근수당)을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재산정하고 추가된 제수당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기아차는 시영운수 사용자와 동일하게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추가 법정수당 지급의무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기아차의 당기순이익 등과 같은 영업활동,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 등 자본상황을 검토한 후 근로자들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아차 사건에 대한 이번 서울고법 판결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재판부가 추가 법정수당 청구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고임금 강성노조 프레임’을 배척했다는 사실이다. 경영계는 기아차노조를 비롯한 대기업노조의 통상임금소송에 대해 이율배반적이고 기업경쟁력을 갉아 먹는 일이라고 비난해 왔다. 평균적인 근로자보다 많은 임금을 받으면서 강력한 조직력을 무기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게 극단적인 이기주의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원고들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근로자의 개별적인 사정에 따라 예외를 인정하는 방법으로 근로기준법의 규범력을 떨어뜨리면, 정작 보호받아야 할 근로자가 제때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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